이 시대를 일컬어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들 한다. 쉽게 말해서 모든 분야가 하나같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심지어 교회까지도 표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 속에 해답이 있듯이, 실패원인을 알면 치유방법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전에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지난 천년의 서양 역사를 '나 밀레니엄'(the Me Millennium) 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요컨대 신(神)이나 제도보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함을 발견한 시대라는 말이다. 각자 이해하기에 달려있겠지만,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역사가 만들어낸 위기의 진짜 이유는 신의 존재를 무시한 나, 즉 하나님 떠난 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여도 큰 무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발견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의 발견은 성경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야만 시대가 안정된다. 그렇지 않고 인본주의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나 중심의 삶'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과 이웃을 무시하는 교만을 만들어내어 결국 이 시대가 총체적 위기의 늪 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겠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앉히는 데카르트적 사고는 이 시대에 진화론과 더불어 인류의 정신을 타락시켰다.
따라서 이제, 정치의 회복은 로마서16장에 기록된 13명의 정치인과 같은 인물이 나올 때 가능하다.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버리는 정치인이 나올 때, 하나님의 절 대 주권과 그분이 운행하시는 응답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기도로 승리해 나가는 요셉과 같은 정치인이 일어날 때, 신문지상의 권모술수는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인생의 해답도 없이 공허 속에 파묻혀 은밀한 중에 예수를 찾아간 니고데모와 같이 육적인 수준과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이 정치마당에 설 때, 정치현장은 암담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브리스가 부부와 같이 참전도자 바울을 도와 목이라도 내어놓는 생명적 관계로 복음과 일치되어, 돈을 벌어야하는 정확한 이유와 더불어 그 사용방법까지도 정확히 깨달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산업인 가운데 일어날 때 경제는 살아난다.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가면 사회와 문화 또한 제 길로 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내적 치유는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한다. 중세의 교회가 타락할 때 정치가 타락하여, 경제가 빚어낸 빈익빈 부익부와 불공평이 더욱 심화되었듯이 오늘날도 교회가 영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있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줄 만한 복음의 위력을 잃어버릴 때, 나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이 희미해질 때 교회는 실패하고 타락할 것이다. 교회의 타락은 전 인류의 영혼의 타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의 타락은 창세기 3장에서 빚어낸 죄와 사망, 저주의 결과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오직 세상이 멸망해 가는 시간표와 성도의 축복, 그리고 세계정복의 시간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현장 속에서 응답받는 교회만이 이 시대를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다.

일전에 뉴욕타임즈 매거진에 지난 천년의 서양 역사를 '나 밀레니엄'(the Me Millennium) 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요컨대 신(神)이나 제도보다 자기 자신이 더 중요함을 발견한 시대라는 말이다. 각자 이해하기에 달려있겠지만,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역사가 만들어낸 위기의 진짜 이유는 신의 존재를 무시한 나, 즉 하나님 떠난 이기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여도 큰 무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발견한다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의 발견은 성경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야만 시대가 안정된다. 그렇지 않고 인본주의와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나 중심의 삶'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과 이웃을 무시하는 교만을 만들어내어 결국 이 시대가 총체적 위기의 늪 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겠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나'를 앉히는 데카르트적 사고는 이 시대에 진화론과 더불어 인류의 정신을 타락시켰다.
따라서 이제, 정치의 회복은 로마서16장에 기록된 13명의 정치인과 같은 인물이 나올 때 가능하다.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버리는 정치인이 나올 때, 하나님의 절 대 주권과 그분이 운행하시는 응답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기도로 승리해 나가는 요셉과 같은 정치인이 일어날 때, 신문지상의 권모술수는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인생의 해답도 없이 공허 속에 파묻혀 은밀한 중에 예수를 찾아간 니고데모와 같이 육적인 수준과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이 정치마당에 설 때, 정치현장은 암담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브리스가 부부와 같이 참전도자 바울을 도와 목이라도 내어놓는 생명적 관계로 복음과 일치되어, 돈을 벌어야하는 정확한 이유와 더불어 그 사용방법까지도 정확히 깨달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산업인 가운데 일어날 때 경제는 살아난다.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가면 사회와 문화 또한 제 길로 가게 되어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내적 치유는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한다. 중세의 교회가 타락할 때 정치가 타락하여, 경제가 빚어낸 빈익빈 부익부와 불공평이 더욱 심화되었듯이 오늘날도 교회가 영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있다.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줄 만한 복음의 위력을 잃어버릴 때, 나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이 희미해질 때 교회는 실패하고 타락할 것이다. 교회의 타락은 전 인류의 영혼의 타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의 타락은 창세기 3장에서 빚어낸 죄와 사망, 저주의 결과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오직 세상이 멸망해 가는 시간표와 성도의 축복, 그리고 세계정복의 시간표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현장 속에서 응답받는 교회만이 이 시대를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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